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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터키 증류소 이야기. -하편- Turkey는 약하지 않다.
안녕하세요-달리 멘토-
블로거- 인스타그래머인
버번쟁이 클라이머,
버클입니다.
지난 시간에- 금주법으로 문을 닫은
올드 힉터 증류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럼 이어서 가보겠습니다-
네, 1919년 시작한 금주법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33년에 끝을 맺게 됩니다.
금주법 이후에 증류소를 재 정비하고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
1935년의 일입니다.
이때 증류소 이름을
최초 인수자 이름인 'Ripy Brothers 증류소'라고 정하게 됩니다.
1936년. 드디어
'와일드터키'라는 이름의 유래가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Austin Nichols사의 임원이었던 Thomas Mccarthy.
이때 그는 친구와의 야생 칠면조 사냥에
술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놀아놈?
그래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버번 위스키의
샘플을 챙겨가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
이거 필드에서 마시기 너무 좋은 버번이었던 겁니다.
그러자 나중에 그때 마셨던 사람들이
"그때 야생 칠면조 사냥때 마셨던 술 더 있냐?"
라고 물어보게 되고,
그렇게 정해진 브랜드 네임이 바로
야생 칠면조. 아니 와일드터키.
그런데, 이 버번. 꽤 잘 팔리는 겁니다.
그래서 Austin Nichols사는 1939년에
식료품 사업을 모두 접고
주류 사업게 뛰어들게 됩니다.
브랜드 네임을 정하고 4년 뒤인
1940년에 첫 와일드터키 배치가 병입 되고,
1942년에는 Austin Nichols가
자신들만의 Wild Turkey 제품으로
판매하게 된게 와일드터키 101- 입니다. 독점 계약이었죠.
이때의 와일드 터키의 메쉬빌이
옥수수 75% / 호밀 13% / 맥아 12%입니다.
Ripy Brothers 증류소는 1949년에
Goulds에 인수되고
증류소 이름도 J.T.S Brown 증류소(Boulevard Distillery)로 변경됩니다.
증류소가 인수되고 1년 뒤-
와일드 터키 라이가 출시되는데-
이때 처음으로 라이 위스키 병이
초록색 라벨로 라벨링 됐는데,
초록색 라벨의 라이 위스키가 잘 팔리는 성공을 목격한 증류소들이
하나 둘씩 초록색 라벨로 라이 위스키를 표시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버번은 빨간색 라벨, 라이는 초록색 라벨로 굳혀지게 됩니다.
그러던 1954년!
드디어 버번의 부처라고 불리우는 그가
볼레바드 증류소에 입사합니다.
바로, 지미 러셀이죠.
입사 후 실력을 키우시고
입사하신지 13년째 되던 해인
1967년. 드디어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십니다.
2년 뒤, Austin Nichols가
Ligget 그룹에 인수되고,
이 회사가 볼레바드 증류소 또한 인수하게 됩니다.
이때 바뀐 증류소 이름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와일드터키 증류소.
새 출발 한 와일드터키 증류소.
하지만 1970년대. 이때에는
미국 버번의 불황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 시기를 Glut Era라고 부릅니다.
공식 명칭으론 버번 불황기-라고 하더군요.
이 불황기가 왜 왔냐-하면
007로 대표되는
미국에서 보여지는 멋쟁이들은 보드카와 진등을 마시고 있었고,
옛것이었던 버번은
오래된 옛날 문화에 저항하는 히피 문화와 더불어
점점 배척되는 노땅의 술이 됐거든요.
그래서 증류소들이 아무리 술을 팔려고 해도
버번을 팔 수 없는 버번 보릿고개였던 것입니다.
증류소들은 살기 위해서
당시 수요가 떨어지지 않았던
유럽이나 일본 시장에 버번을 수출하기도 하고
기념품에 술을 담아서
조각품에 우연히 들어간 술을 판매하던
눈물겨운 시기였습니다.
이 버번 보릿고개는
1990년대 까지 지속 됩니다.
이때 술이 너무 남아서
1996년에는 저장고가 바닥나자
창고를 빌리기 까지 합니다.
그러다이때 거대 주류기업이
와일드터키를 인수한게 1980년.
시바스 리갈로 유명한
페르노 리카.
그 후 1년 뒤.
지미의 아들 에디 러셀이 증류소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마스터 디스틸러지만-
잡초뽑기부터 일을 시작하셨다고..
이때는 짬이 좀 찬..
그러나.. Glut Era가 끝날 때 쯤.
와일드터키에 하나의 재앙이 불어옵니다.
바로.. 오래 된 증류소는 한번 쯤 겪는 사건.
화재사고.
2000년에 웨어하우스 중에 하나가 불타게 되고
이때 17000개의 배럴이 타서 없어지게 됩니다.
공급량이 모자랐는지-
2004년에 통입 도수를
107proof에서 110proof로 올리게 됩니다.
켄터키 같은 고온 건조한 기우에서는
숙성할 수록 도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물을 더 많이 탈 수 있게 되죠.
네, 밑장 빼서
공급량을 맞출 수 있게 되는 겁니다.
2006년에 한번 더 통입 도수를
올리게 돼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통입 도수가 115 proof.
이렇게 생산량을 조절하던 와중
2009년.
지금의 회사인
캄파리사가 와일드터키 증류소를
인수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2년 뒤.
2013년에 새로운 와일드터키 증류소가
예전 Ripy 증류소 위치에 새로 지어지게 됩니다.
2년 뒤에 아버지 지미 러셀을 이어서
아들인 에디 러셀이 마스터 디스틸러가 됩니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브루스 러셀이
증류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런 대를 이어오는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와일드터키는 버번 입문 3대장으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와일드터키 증류소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다음엔 새로운 증류소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만나요!
알아두면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 좋은
버번 지식을 알려 드리는
달리 멘토
버번쟁이 클라이머,
버클이었습니다!